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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2. 22世 〉38. <부정공>취정공휘연충묘갈명(醉亭公諱淵冲墓碣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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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부정공>농와공휘연기묘갈명(聾窩公諱淵錤墓碣銘)
聾窩公諱淵錤墓碣銘(농와공휘연기묘갈명) 東準葬其先大人聾窩公於鷹峰洞負辰之原粤四年以遺事一通謁余墓銘窃念余曾過其廬暫叙説話而見門閭淸灑几案靜肅而迎師課子頗有古色之蒼然心乎愛矣擬將源源嗚呼欷矣風燭人事幽明遽隔督余君身後役忍可爲也忍可辭諸按君諱淵錤字在燮聾窩其號也玉川之趙以高麗光祿大夫門下侍中諱璋爲鼻祖至諱元吉諡忠獻號農隱與圃牧者賢有道義交有勲勞恭讓朝封三重大匡輔國玉川府院君是生諱瑜號虔谷官典農寺副正至我 朝以漢城判尹不就 世宗特書孝子前副正旌其忠孝是生諱崇文號竹村官節度使値 端廟遜位 贈童蒙敎官諱哲山同殉義于六臣禍兩世幷旌腏食 莊陵壇士林立祠謙川爼豆之至諱汝堅號友松自順天始寓求禮四友安貧好義以壽階嘉善大夫諱鉉澤鎭興根浩秉鉉高曾若祖禰也妣高靈申氏稱之女也 高宗乙未八月十日生君自齠齡性度寬厚儀宇端雅宅心處事一以公正卑己尊人爲持身之要事親克孝居不離側出必遄返遵奉敎誡少無違拂和而御家聲無戚咨遭艱情文備至伯兄以瘧多年叫苦左右救治靡不殫誠竟至不淑撫愛孤姪無異己子言有制行有度待人接物敬誠爲主不以貴賤有間雖門前人必備卓床以食之設家塾而必邀賢德有望者以敎門子弟及村秀或有因貧廢學者必周給而爲資焉及其臨終遺語家人曰享福之源在於敦睦溫飽之計在於勤儉汝等銘念云云噫此雖寥寥數語可以見慥慥乎務德踐實中出非一朝襲以取之也決矣噫君以好個姿質若遊藝學門其成就有不可量而以汨於幹蠱不可大肆力於文字之間然一生用力汲汲於爲善之地子夏所謂吾必謂之學矣者非耶乙未四月二十六日卒配和順崔氏昌圭女也 高宗丙申生孝養舅姑敬事君子育二男一女長東準娶南原梁氏汝錫女次東塾娶慶州弘官女女適鳳城張季浩孫成勲榮勲餘不盡述銘曰 敦睦勤儉臨死垂訓鏟跡晦采不求聲聞宅心以仁處物主寬我守我職岩阿考槃睠彼鷹峰松林蒼菀惟爾樵牧勿剪勿伐 戊戌春正月既望 族從 敏植 撰 농와공휘연기묘갈명(聾窩公諱淵錤墓碣銘) 동준(東準)이가 그 선대인 농와공을 鷹峰洞 負辰坐原에 장사하고 四년을 지나서 유사 一통을 가지고 나에게 묘명을 청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일찍 그 집을 지나면서 잠시 말을 하여 보았는데 里門이 청쇄하고 궤안이 정숙하며 스승을 맞이하여 아이를 가르치며 자못 고색이 창연한 것을 보고 마음으로 사랑하여 장차 계속 친하고자 하였더니, 아, 탄식이 절로난다.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인사가 유명이 문득 막혀 나에게 그대 죽은 뒤에 일을 맡기니 차마 어찌 하겠으며 차마 어찌 사양하겠는가. 살펴보건대 군의 휘는 연기요 자는 재섭(在燮)이며 호는 농와로 옥천 조씨이다. 고려 광록대부 문하시중 휘 장(璋)을 비조로 휘 원길(元吉)의 시호는 충헌이요, 호는 농은이며 포은 및 목은 등 제현과 더불어 도의로써 교유하였고 훈공이 있어 공양왕조에서 삼중대광 보국 옥천 부원군을 봉하였으며, 생 휘 유(瑜)의 호는 건곡이요, 벼슬은 전농시 부정으로 조선에서 한성 판윤으로 불러도 나아가지 아니하니 세종조에서 특별히 효자 전부정이라 써서 그 충효를 정포하였다. 생휘 숭문(崇文)의 호는 죽촌이요, 벼슬은 절도사로 단종이 대위를 사양할 때를 당하자 증 동몽교관 휘 철산(哲山)과 함께 육신화에 순의하여 양대가 아울러 장릉단에 철식하고 겸천사에 향사하였다. 휘 여견(汝堅)의 호는 우송(友松)인데 순천에서 구례 사우로 처음 이사와서 가난을 편안히 하고 의리를 좋아하던 壽職으로 가선대부가 되었고, 휘 현택(鉉澤), 진흥(鎭興), 근호(根浩), 병현(秉鉉)은 고조, 증조, 조, 고요, 비는 고령 신씨(高靈申氏) 칭지(稱之)의 따님이다. 고종(高宗) 을미년(乙未年一八九五) 八월 十일에 군이 출생하였는데 七〜八세 때부터 성질과 도량이 너그럽고 두터우며 거동과 기우가 단아하고 일처리를 마음을 한결같이 공정하게 정하며 자기를 낮추고 사람을 공경함으로서 몸가짐 요결을 삼고 어버이를 섬기며 능히 효도하여 거하며 곁은 떠나지 않고 나가면 반드시 빨리 돌아와 훈계를 준수하여 조금도 어김이 없고 화기로 집안을 거느려 슬퍼하고 원망하는 자가 없었다. 초상 때 정과 예가 지극하고 백형이 학질로 여러 해를 고통하니 좌우로 구원하고 치료하여 정성을 다하지 아니함이 없으나 마침내 별세하니 외로운 조카를 기출같이 어루만져 사랑하고 말은 절제가 있으며 행실은 법도가 있고 사람을 대접하고 물건을 받을 때 공경과 지성을 주장하여 귀천으로서 사이가 있지 아니하며 비록 거지라도 반드시 상을 차려 먹게 하고 집에 서재를 설치하여 반드시 덕이 있고 유망한 스승을 맞이하여 문 자제와 마을 수재를 가르키며 혹 빈곤으로 학업을 폐한 자가 있으면 반드시 도와주었다. 임종에 이르러 집 사람에게 유언하되 행복의 근원이 화목에 있고 따뜻하고 배부른 근본이 근검에 있으니 너희들은 잊지 말지니라. 아, 쓸쓸한 두어마디 말이 가히 덕에 힘쓰고 실지를 밟는데 독실한 곳에서 나온 것이요 하루 아침에 승습하여 얻은 것이 아니다. 아, 그대가 좋은 자질로서 만일 예학 문하에 놀았으면 그 성취를 헤아릴 수 없을 터인데 가사에 골몰하여 문학에 크게 힘을 쓰지 못하였으나, 일생 사업이 착한 일 하는데 힘을 다하였으니 자하(子夏)씨가 이른바 내가 반드시 배웠다고 이를 자가 아닌가. 을미년(乙未年) 四월 二十六일에 졸하고 부인은 화순 최씨(和順崔氏) 창규의 딸로 고종 병신년(丙申年一八九六) 생인데 시부모를 효도로 봉양하고 군자를 공경으로 대하였다. 아들은 동준(東準), 동숙(東塾), 딸은 봉성(鳳城) 장계호(張季浩)의 처며 손자는 성훈(成勲), 영훈(榮勲)이고, 나머지는 다 기록하지 아니한다. 새겨 말하기를, 화목하고 근검하라 운명하며 유언하였다.(敦睦勤儉, 臨死垂訓), 자취를 숨기고 풍채를 감추어 성문을 구하지 아니하였다(鏟跡晦采 不求聲聞), 마음을 정하며 인의로서 하고 물건을 처리할 때 관용으로서 하였다.(宅心以仁 處物主寬), 내가 나의 직분을 지켜 바위 언덕에 세상을 피하여 즐긴다.(我守我職 岩阿考槃), 돌아보니 저 찬 샘에는 솔수풀이 울창하다.(睠彼鷹峰 松林蒼菀), 오직 너희 초동 목수들은 갈기지 말고 치지 말지어다.(惟爾樵牧 勿剪勿伐) 족종(族從) 민식(敏植)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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